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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재배 일지/2022년

2022년 10월 3일 월요일 00:04:09

by 스튜디오 잣질 2024. 7. 3.

 

트레이 현상을 했다. (위 이미지는 건조 중인 필름을 휴대전화로 촬영 후 앱으로 반전한 것이다.) 4x5필름 8컷 중 4컷은 1:50, 4컷은 1:100 비율로 현상액을 조절해서 작업했다. 이렇게 나눠서 현상한 이유는 약품으로 인한 얼룩 때문인데, 탱크 현상에서 볼 수 없었던 얼룩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첫 번째 트레이 현상에서는 1:50 비율로 부드러운 교반을 했다. 기존 방식대로 1분 후, 10초간 교반을 했는데 그 결과 탱크에서 보여줬던 묵직한 톤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교반의 강도가 약해지니 콘트라스트가 상당히 많이 줄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 톤 영역이 생각보다 어두워서 고민이 된다.

 

그리고 이후 현상에서는 1:100으로 약품 비율을 다시 조정하고 현상 시간을 17분으로 늘렸다. 메뉴얼에는 16분으로 되어 있지만 하이라이트 톤을 좀 더 올리기 위해 1분을 늘렸다. 하지만 다음 현상에서는 1분을 더 늘려서 총 18분으로 현상할 계획이다. 하이라이트 톤이 아직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50에서 보였던 얼룩은 약 50% 정도로 줄었지만 여전히 눈에 거슬린다. 사람의 손으로 교반을 하는 작업이라 얼룩은 어쩔 수 없지만, 이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앞으로 트레이 현상을 조금 더 많이 해보고 데이터를 쌓아야 할 것 같다.

 

흑백 필름 현상을 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 얼룩이 아니다. 현상하는 작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점점 더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우려가 된다. 당장 오늘 일지를 쓰고 나면 새벽까지 해외에서 1:50과 1:100 현상 비율에 따른 이미지 결과물의 차이점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또한 트레이 현상 교반에서 내가 놓치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찾아봐야 하는데 이 모든 기술 영역이 잡초 재배 프로젝트에서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전시 중인 설치 작업의 경우 사실 필름이 아닌 디지털 이미지를 생산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사진 그 자체의 퀄리티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엮인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연관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물 한 개의 이미지가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크기로 들어갔기 때문에 이미지 크기의 유동성을 고려한다면 필름 작업 후 스캔을 거쳐 후보정하는 과정보다는 디지털 작업 프로세스가 적절한 표현 방법이었다. 그래서 아날로그 현상을 하면서 문제점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에 디지털 작업을 더 많이 해서 체계적으로 컴퓨터 폴더에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면서 생산을 한다면 어떨까 고민을 좀 해봤다. 하지만, 이미지 한 장 한장의 접근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전시와는 달리 이미지 한 장으로 보여줘야 하는 전시에서는 지금의 필름 작업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한다면 다소 시간이 걸리고 실패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필름 작업이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필수다. 나의 집요함이 괜히 필름 현상 결과물에 집착을 하면서 생기는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트레이 현상이 탱크 현상 보다 갖는 명확한 장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약품이 새거나 바닥에 흘릴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일회용 고무장갑이 다음에도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아주 깨끗하다. 다만 Fixer와 H.C.A의 경우 매번 100ml를 사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Fixer와 H.C.A는 새 제품이 1000ml기 때문에 결국 열 번 밖에 사용을 못한다는 뜻이다.

 

건조 중인 8컷의 필름이 다 마르면 루페로 네거티브를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고 난 이후 1:50으로 할지, 1:100으로 현상할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교반 시간을 1분간 10초로 할지, 15초로 할지, 아니면 20초로 할 지도 그때 판단할 계획이다. 이제 5개의 홀더에 다시 필름을 장착하고 공부를 해야겠다. 

 

 

(10월 6일과 7일에 서울에 다녀와야 하는데 이상한 연휴 때문에 비행기 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