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상으로는 하루 차이인데 일지를 쓰는 기분이 일주일은 지난 것 같다.
서울에 다녀왔다.
해야 할 일들은 모두 마쳤지만 해야 할 일도 생겼다. 유철수 실장님을 10년 만에 뵀다. 정말 오랜만에 실장님을 만났지만 예전처럼 너무나 반갑다. 나는 누군가와 만나서 한 시간 이상 이야기하며 진득하게 앉아있는 성격이 아닌데도 실장님과 무려 4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중간에 매운탕을 달라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선 것 외에는 계속 앉아있었다. 실장님도 나와 같았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나눴다. 지난 10년은 나에게 30대, 실장님은 40대의 시간이다. 실장님은 요즘 내가 고민하는 부분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일들에 대해서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셨고 그 이야기 끝에 나는 조심히 네거티브를 드렸다. 필름을 드리는 건 마치 홀딱 벗은 모습으로 실장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매우 부끄럽다고 말씀드리니 활짝 웃으시며 "이제 공이 나에게 왔네~"라고 말씀하신다. 내 감정, 발가벗은 심정으로 필름을 건네는 작가의 입장을 이해하신다. 사진 작업을 시작한 이래로 <프린터: 아날로그 프린트를 하는 사람>에게 더욱이 <<프린트 마스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프린터>>에게 필름을 보여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개인전에 네 점의 '젤라틴 실버 프린트'를 전시한다. 크기는 작지만 그 안에는 벌레들이 찍혀 있는데 나는 그 벌레가 잘 나올 수 있도록 실장님께 부탁들 드린 것이다. 그리고 촬영 과정과 필름의 선정, 현상 방법까지 모두 말씀드렸더니 작업 결과물의 목적을 이해하셨다. 내가 원했던 과정이다. 오래전(2006년 ~ 2008년)에 마젠타(지금은 사라진, 하지만 내가 작업을 이어나가는 동안은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상업적인 랩(lab) 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생인 내게 건물 전체 키와 각종 프린터와 현상실, 약품 심지어 암실까지 모두 제공해 줬던 곳이다. 당시 마젠타는 칼라 파트 이찬우 실장님, 흑백 파트 유철수 실장님이 계셨고 나는 그 두 분께 전반적인 사진 프로세스를 모두 배우고 이를 응용해 여러 방식으로 작업해 볼 수 있었다. 아, 마젠타의 두 분 실장님께 갓 복학한 27살 나를 소개해주셨던, 이 친구는 끝까지 작업을 할 것 같은 진득한 녀석이라고 너스레 웃으며 말씀해주셨던 분이 방병상 선생님이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내 맘 속 한가운데는 언제나 마젠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기 때문에 개인전을 할 때는, 항상 마젠타 로고를 후원업체로 명시하고 있다. 칼라랩은 마젠타가 없어지고 난 뒤, 그곳에서 일을 하셨던 임형주 실장님께서 새로 만든 칼라현상소다. 칼라랩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현상과 프린트, 액자까지 모두 무보수로 작업해 주고 있다. 아예 내 장부가 없다. 물론 나중에 잘 풀리면 갚겠다고 했지만 벌써 그 얘기를 한 것도 10년이 넘었다. 그래서 칼라랩 역시 개인전 포스터나 도록, 홍보용 이미지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곳이다. )에서 밤새도록 프린트를 하고 사진을 해석하고 만들어내는 방식에 대해서 두 분 '프린터'들과 이야기 나누고 테스트를 수도 없이 했던 그때와 같은 심정이었다.
이제 벌레 사진은 아이러니하지만 최고의 프린터에게 넘어갔다. 이제 곧 실장님께 초안을 받으면 같이 대화하며 해석을 해 나가면 된다. 문제는 액자를 벽에 수직으로 고정해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지에 대한 것이다. 현재는 나무 선반을 제작해서 끝에 낮은 턱을 만들어서 액자를 약 70도 정도 기울여서 보여주고 싶다. 이유는 지금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렇게 보여줘야 벌레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내일 현기훈 작가님과 미팅하면서 선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그리고 허민자 작가님께 찾아가 잡초를 위한 화분과 함께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화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이다. 정원에 있는 화분에 심어진 잡초들이 바람에 너무나 쉽게 쓰러진다. 매일 아침 화분 일으켜 세우는 게 일일 정도다.
서울에서 있는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비가 내린다."는 말보다는 "비가 질질 흐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제주에는 비가 아예 오지 않았다. 하루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정원에 있는 잡초들은 모두 말라버렸다. 부랴부랴 물을 듬뿍 줬지만 다시 이파리를 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고무적인 일은 [대안공간 루프]에 전시할 "환삼덩굴"은 일주일 사이에 상당히 많이 자랐다는 것이다. 아주 놀라울 정도다. 다른 풀들이 시들어서 죽어가는 상황에도 녀석만은 싱싱하다.
아주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노지에서 자라는 잡초들은 물을 주지 않아도 이렇게 더운 날씨에 싱싱하고 튼튼하게 잘 자라는데 왜 화분에서 자라는 잡초들은 시들어 버릴까? 땅이 삐쩍 삐쩍 말라서 금이 갈 지경에도 노지 잡초들은 멀쩡하게 살아있는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다.
'잡초 재배 일지 > 2022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7월 6일 수요일 21:35:36 (0) | 2024.02.21 |
---|---|
2022년 7월 5일 화요일 23:50:17 (0) | 2024.02.21 |
2022년 6월 29일 수요일 05:15:50 (0) | 2024.02.21 |
2022년 6월 28일 화요일 05:11:05 (0) | 2024.02.21 |
2022년 6월 27일 월요일 00:01:51 (0) | 202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