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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재배 일지/2022년

2022년 10월 28일 금요일 22:34:59

by 스튜디오 잣질 2024. 7. 8.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면접을 보고 왔다. 대기실에 있을 때는 전혀 긴장을 하지 않았는데 면접실에 가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겪는 호흡 곤란이 왔다. 나조차 너무 놀라서 처음 10초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은 했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왜 모든 면접관은 무섭게 생겼을까. 웃지도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주어진 시간 5분이 지나자 질문이 두 개 주어졌다. 하나는 창동에서 할 작업, 나머지 하나는 나의 작업과 예술의 무의미성에 관한 것인데 두 번째 질문을 받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잡초 재배 프로젝트는 예술의 무의미성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지만 프로젝트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성을 비유해서 설명했다. 잡초가 모두 죽어야 작업이 끝나는데 그렇다고 작업을 끝내기 위해 잡초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모든 면접이 그렇지만 이번 면접은 더욱 미련이 남는다. 그곳에서 바라본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들이 상당히 좋았는데 말이다. 아, 밥을 먹고 근처 정독도서관 앞에 있는 카페에서 마신 커피도 매우 좋았다.

 

그래도 그곳에서 만난 Ellie 작가님은 인상적이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모습이었다. 대기실에 계셨던 모든 작가님들이 모두 긴장의 무게를 간신히 견디고 있었을 때 Ellie 작가님은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내게 먼저 인사를 주셨다. 그리고 5분이 넘는 시간동안 내 작업을 아주, 아주 깊은 관심으로 경청해 주셨다. 작가님도 면접을 기다리는 입장에서 다른 작가의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지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 Ellie 작가님께서 이메일로 안부를 주셨다. 

 

 

오늘은 화장실에서 자라고 있는 풀 중에 노란 꽃이 핀 녀석을 디지털로 촬영했다. 아무리 흑백을 고집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점점 사라져가는 녀석들의 아름다운 색을 간직해 보고 싶었다. 위 사진 속에 삐죽삐죽 나오는 작은 줄기들은 따로 대형 카메라로 촬영했다.

 

11월 3일 전시는 비록 단체전이기는 하지만 들어가는 작품 3개를 한데 묶어서 제목을 정했다. <죽은 잡초를 위한 레퀴엠>이다. 죽은 자를 위한 음악은 없지만 12개의 식물 재배등으로 묵언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 아래는 전시와 관련한 하나의 풀에 대한 이야기다.

 

"창가에 놓인 기이하게 생긴 잡초가 하나 있다. 얇고 가녀린 줄기를 키워낸 녀석은 한 때 꽃도 피워낸 기특한 풀이다. 하지만 나의 욕망은 하나의 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줄기의 한 부분을 잘라냈다. 옆에서 같이 키우는 다른 잡초와 같이 하나를 잘라내면 다시 어린 줄기를 내밀어 풍성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위태롭게 꺾인 줄기는 다시 하나의 꽃을 힘겹게 피워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게 된 녀석은 결국 무게 중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구부러지고 말았지만 나는 이미 힘을 다해버린 녀석의 몸에 테이프를 감았다. 반짝반짝거리는 투명 테이프는 녀석의 꺾여버린 허리를 칭칭 감아 한동안 악착같이 버텼지만 찬 바람이 불면서 다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