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와 둘째 아이가 오늘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눈병이 아직 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둘 다 모두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잡초 촬영을 할 때 주로 흰색 배경지를 사용했다. 풀 색이 대부분 초록색이나 연두색이기 때문에 녀석들의 형태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검은색 배경지를 사용했다. 노지에서 자라는 녀석들, 죽은 잡초들을 몇 장 찍었는데 하얗게 말라죽은, 자연에서 자랐던 "어저귀"의 형태를 드러내는데 흰색보다는 검은색이 맞을 것 같았다. 내 손 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잡초가 아닌 야외에서 찬바람과 비를 그대로 맞으며 자라던,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씨를 맺고 죽음을 맞이한 풀이다. 나 역시 노지에서 죽은 풀은 아무 관심도 없이 매번 지나쳐왔지만 오늘 야생 어저귀의 죽은 모습을 보고는 작업실로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요 며칠 동안 아이들과 밖에 산책을 나가면 야생 어저귀가 죽은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큰 감흥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부터 자꾸 녀석이 생각이 났다. 아침 5시에 잠을 잤고 9시에 일어났으니 아침이라고 하는 게 좀 이상하지만 계속 맴돌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고 있는 이 시간에 나가서 죽은 어저귀를 들고 와서 촬영을 한 것이다.
내가 키우는 어저귀들은 줄기나 이파리가 매우 가늘고 연약하다. 많은 영양제와 물, 그리고 따뜻한 보살핌을 매일 받고 있지만 오히려 빈약하게 자란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야생의 어저귀와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난다. 사진 속, 죽은 어저귀의 줄기 부분은 마치 뱀 비늘과 닮았다. 그 두께는 온실 속 녀석들의 줄기보다 열 배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아주 두껍다.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흑백 변환만 한 이미지임에도 표면 질감을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야생 어저귀의 특징은 줄기의 밑단에서부터 가지들이 생겨서 옆으로 뻗어나가 있다. 이는 정원에서 자라는 화분 어저귀와 매우 다른 점으로 화분에서 자라는 어저귀들은 위로만 길게 자란다.
야생 어저귀들은 지금 모두 죽었다. 집 밖이 모두 밭이라서 풀들의 상태를 관찰하기 매우 좋은데, 살아있는 풀들은 대부분 키가 작은 녀석들 뿐이다. 같은 밖이지만 내 정원에서 자라는 어저귀들은 이제 막 씨앗을 품기 시작했다.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녀석들의 얇은 줄기를 보고 있지만 사실 애처로울 때도 있다. 잡초 재배 행위는 자연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행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촬영한다는 것이 5컷이나 찍었다. 대형 필름을 사용하다 보니 중형 필름의 사용 빈도가 매우 줄어들었다. 딜레마다. 중형 필름의 역할도 분명 있지만 내 욕심으로 인해 손이 잘 안간다. 만약 대형 카메라용 마크로 렌즈가 있었다면 중형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들은 진작에 팔았을지도 모른다.
(스트로보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로 두 개의 조명을 쓰고 있는데 바보같이 광동조 기능을 끈 상태로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어제서야 비로소 한 쪽이 터지질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공부해서 광동조 기능을 살렸다. 그래서 그동안 촬영한 이미지들을 살펴보면 쉐도우 부분이 짐작했던 것보다 살짝 어두웠다. 메인 등의 조명은 풀 발광 1/1, 서브 등의 조명은 1/32로 세팅해서 찍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일어났다고 전화왔다. 집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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