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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재배 일지/2022년

2022년 6월 15일 수요일 22:26:42

by 스튜디오 잣질 2024. 2. 20.

 

내가 가진 여러 성향 중 가장 안 좋은 것은 무엇이든 하나 꽂히면 그 안에서의 삶에 빠져버려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잡초를 촬영하다 보면 특히나 이런 일이 빈번한데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다. 실내에서 키우는 잡초에도 벌레들이 많지만 주로 해충이 많다. 하지만 정원에서 햇빛을 받으며 자라는 화분 안의 잡초에는 곤충들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아기 여치가 나를 사로잡았다. 아, 그전에 푸른빛이 도는 황금색의 매력적인 엉덩이를 가진 파리 한 마리를 촬영하느라 한 롤의 필름을 10여분 만에 모두 써버렸다. 셔터 타임이 1초이기 때문에 녀석이 조금이라도 다리를 떨거나 움직일까 봐 촬영 실패를 염두에 두고 계속 찍다 보니 그렇게 됐다. 다시 아기 여치로 돌아와서, 녀석의 실제 크기는 1cm가 채 안된다. 하지만, 벨로우즈를 최대한 늘리고 56 접사튜브를 2개 연장해서 바라보면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녀석의 눈동자가 서로를 응시한다. (녀석의 입장에서 보면 렌즈를 통해 커다랗게 확대된 내 눈동자가 보일 것이다.) 이토록 극도로 긴장되는 대치 상황에서 다시 셔터 릴리즈를 잡고 1초 동안 녀석의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길 바라며 또 한 롤의 필름을 촬영했다. 지난달 구매한 필름을 아껴 쓰느라 그래도 6월 중순까지 버틴 것이다. 이제 매거진에 10컷 정도가 남았는데 일지를 쓰고 나면 다시 필름을 주문해야 한다. 그리고 [산지천 갤러리]에 새로 설치해야 하는 텍스트를 컷팅 필름(시트지)으로 주문했는데, 너무 비싸다.

 

"잡초 재배를 위한 가구 Prototype 1, w1300 x d800 x h1400 mm, 천연 오일을 바른 시프러스 나무와 식물 재배등, 4개의 팬과 웹 카메라, 2022"가 있던 자리

 

요렇게 세로 글자 크기 2cm, 흰색으로 주문했는데 33.500원이다.

 

오늘 오전에는 잡초 밭에서 잡초 씨앗을 두 봉지 채종했고 이후로 온종일 작업실에 앉아서 개인전 작품 준비를 했다.

 

 

지난 10년동안 수많은 공모전에 지원해 봤지만 단 한 번도 된 적이 없다. 2011년 이후로 매해마다 적게는 5번, 많게는 10번 가까이도 지원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이 마흔셋이 되어 경력이 단절된 작가가 되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이 제한이 있는 공모전과는 멀어지게 됐고 혼자 있는 시간도 점점 많아졌다. 하지만, 이번에 정말 운이 좋아서 개인전 선정이 됐다. 아내에게 달려가 큰 소리까지 외치며 기쁨을 드러냈을 정도다. 흥분되고 무척 기대가 되지만, 작품 제작 비용을 마련할 방법은 여전히 없다.

 

 

내일은 셋째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첫째와 둘째도 집에서 간단하게 케이크에 촛불만 붙였는데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준비할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무척 미안하다. 아직까지 돌잔치도 한 번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다하는 그런 행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안된다. 

 

 

저녁에는 다시 또 쌓여있는 필름들을 현상할 예정이다.

 

 

 

 

 

 

 

 

 

 

 

귀덕 해안도로에 가서 바다를 보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