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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재배 일지/2022년

2022년 9월 27일 화요일 13:09:44

by 스튜디오 잣질 2024. 5. 23.

 

일주일 만에 일지를 쓴다. 매우 바빴던 일주일이었다. [대안공간 루프] "자매들, 우리는 커진다." 전시 설치를 6시간 동안 했고 오프닝까지 무사히 끝냈다. 지난 개인전에서 고민했던 정형화에 대한 부분을 줄이기 위한 유기적인 디스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했다. 포맥스 위에 접합한 사진 설치 방식은 앞으로도 자주 사용해 보고 싶다. 방병상 선생님께 이미지를 보여 드렸더니 오랜 시간 설치만 해 온 작가의 전시 같다고 칭찬해 주셨다. 선생님의 칭찬은 선생님과 인연이 생긴 이후로 처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환삼덩굴을 위한 조립식 야외 나들이 기구>다. 부피도 컸고 너무 무겁다. 위 사진 속 중간지점 밑에 놓인 작품이 그것이지만 최종 설치에서 뺐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퀄리티도 떨어졌다. 기내용 캐리어에 들어갈 수 있으면서 이동이 쉬워야 하는데 앞으로 해결 방법을 찾고 다시 제작해야 한다. 반면 또 다른 수확은 캐리어의 사용 방법이다. 제주에서 서울로 작품들을 운송할 때 모두 대형 캐리어에 담아서 왔는데 '문아름 코디네이터'의 조언으로 캐리어 역시 설치 작업의 일부로 활용하기로 했다. 그래서 <환삼덩굴을 위한 조립식 야외 나들이 기구가 들어있는 캐리어>가 제목이 됐고 그대로 설치가 됐다. 또한 <환상덩굴을 위한 10개의 식물 재배등을 운반할 수 있는 캐리어>도 그 옆에 놓였다.

 

개인전 이후로 점점 변화하고 있는 것는 그동안 철조망의 날카로운 이빨과 촘촘한 그물같이 나를 옥죄고 있던 정형화에 대한, 수직과 수평의 올가미를 스스로 해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유연해지고 있다. 20년 전, 2002년에 조형예술과 1학년 파운데이션 때, 김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백지상태의 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선생님은 내게 "다슬 씨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는 하얀 도화지와 같아서 나와 다른 선생님들께서 가르치고 함께하려는 목표를 구 누구보다도 빠르게 습득하고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제주에서의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주변의 것들을 다시 기억하고 보고 배우고 있다.

 

 

 

서울에서 제주로 와서 바로 준비한 것은 <죽은 개망초와 망초를 위한 1,000개의 식물 영양제> 설치 작업이다. 세계자연유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주시 구좌읍 월정리 797-6번지에 속해 있는 모래밭 위에 설치하는 작업이다.

 

 

1,000개의 식물 영양제는 길이 1,600mm의 투명 pvc 파이프에 연결됐다. 길이가 긴 만큼 바람이 불면 부드럽게 흔들리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파이프가 너무 길어서 식물 영양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넘어간다. 현장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다시 1,000mm 이하로 모두 잘라서 설치를 했는데 다행히 괜찮다. 서울에서 제주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기 넘었다. 대충 씻고 작업실에 있는 영양제와 파이프를 자동차에 싣는데만 세 시간이 걸렸다. 새벽 2시가 넘었고 대형 필름을 홀더에 장착하고 대형 카메라 장비 일체를 준비하는데 또 한 시간이 걸렸다. 새벽 3시가 조금 지나서 잠을 잤고 한 시간 뒤인 4시에 일어나서 설치 장소로 이동했다. 설치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상을 했기 때문에 새벽에 출발했는데 집에서 월정리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아침 5시 40분부터 차에서 영양제와 파이프를 하나하나 꺼내서 100미터를 걸어가야 모래밭이 나온다. 그리고 밭의 크기가 2,000평이 넘었기 때문에 차에서 설치 장소까지 왕복 400미터를 걸어 다녀야만 했다.

 

무릎이 너무 고통스럽다. 출입구가 따로 있는 밭이 아니기 때문에 동굴 위로 난 길을 오른 이후 다시 내려가고 밭담을 뛰어넘는 과정을 수 백번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일지를 쓰고 있는 현재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고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번 설치 작업의 결과물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와의 싸움, 치열한 고민,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끝내고 작가와 기자들, 그리고 큐레이터와 일반인들이 내 작업을 마주할 때의 모습이 궁금하다.

 

다시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