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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재배 일지/2023년

2023년 1월 14일 토요일 00:41:25

by 스튜디오 잣질 2024. 7. 23.

 

무려 열흘 만에 일지를 쓰고 있다.

 

결국 파리바게트 취업 지원서를 냈지만 연락이 없다. 그래서 식재료 배송을 하는 업체에 지원서를 냈는데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면접을 봤지만 그냥 경험에 그쳤다. 나이가 60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 대표님께서 내 이력서를 보시더니 나를 한창 훑어보며 웃으신다. 보통 이력서에는 그간 일을 한 이력이 있겠지만 내 이력서에는 전시 이력만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대표님은 조금 있다가 왜 전혀 맞지도 않는 일을 하려 하냐고 물으시길래, 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드렸다. "제 덩치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힘은 좀 씁니다. 그리고 미술 작업하는 사람은 운전 배송을 하면 안 됩니까? 이력서는 제가 다시 갖고 갈까요?" 그리고 면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날 면접은 편의점 한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라면을 먹는 손님을 마주 보며 치른 최악의 면접이었다.

 

며칠 뒤, 쿠팡 배송직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서울 본사에서 연락이 왔고 다음 주 17일에 면접 보러 서울에 가기로 했다.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오픈 스페이스 배] 대표님과 큐레이터님께서 제주도에 다녀가셨다. 3월에 있을 개인전 준비로 사전 미팅을 했다. 취업 준비로 이래저래 정신이 없는 와중에 두 분과의 만남은 내게 정말 소중하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쿠팡"에 지원했다고 말씀을 드렸고 어쩌면 주말 이외에는 전시장에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믿어 주신다. 이번 개인전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 늘 그랬지만 실질적으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 사진과 액자는 곧 준비가 되겠지만 문제는 입체 작업들인데 이와 관련해서 어제 [타임챔버] 문작가님과 제작 가능성에 대해 화북에서 미팅을 했고 오늘 연락을 받았지만 '불가능'이라는 답을 들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돈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내 작업을 제작하려면 꼬박 두 달 동안 작품만 제작해야 하는데 그러면 실질적으로 돈이 되는 다른 일은 못하시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프다. 문작가님의 말씀이 무척 공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 작업을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평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전화를 끊기 전에 다시 한번만 생각해 봐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하나만이라도 문작가님께서 만들어 주시면 나머지는 내가 만들거나 타 지역에 계신 작가님들께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어쩌면 이번 전시에 잡초를 위한 음악을 제작해 주실 뮤지션과 함께 전시를 꾸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원했던 뮤지션이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단풍을 볼 수 없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 전, 부끄러운 마음에 가명을 사용해서 단체전에 작품을 하나 냈던 경험이 있는데 그때 작품의 이름이다. 내가 왜 이런 방향을 지닌 작업을 하게 됐는지 그 처음의 이야기를 시점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3년 동안 내 손 안에서 자란 "새포아풀"을 좀 전에 화분에 옮겨 심었다. 허민자 작가님께서 만들어 주신 소중한 화분이다. 이번 개인전에도 전시가 될 작품이다. 촬영은 따로 하지 않았다. 필름이 조금 있지만 최대한 아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