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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 재배 일지/2022년190

2022년 4월 14일 목요일 22:17:32 폭풍우가 지나갔다. 정원에 있던 여러 집기들이 모두 날아갈 정도였는데 다행히 잡초 모종판들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 오늘은 120mm 한 롤을 촬영했고 다음 현상을 위해 릴에 필름을 끼워 넣을 예정이다. "아트스페이스 신사옥"에서 개인전이 잡혔다. 오늘 전화를 받았는데 10년 동안 수도 없이 여러 군데에 개인전 지원을 해서 모두 떨어졌는데 잡초들이 내게 이렇게 좋은 기회를 준다. 잡초들이 가장 좋아하는 축축한, 그리고 뜨거운 8월 여름, 녀석들을 위한 개인전을 준비해야겠다.     **음원을 만들어서 전시장에 틀어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나마 친분이 있는 '들국화' 최성원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볼까..** 2024. 1. 29.
2022년 4월 14일 목요일 00:16:55 잡초들을 위한 재배실의 디자인이 거의 다 됐다. 1100 x 700 x 1200mm(가로 x 세로 x 높이)로 트레이가 놓이는 위치는 일반적인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탁의 높이와 비슷하게 했다. 위의 디자인은 LED바가 들어가는 형식으로 만약 둥근 갓 모양의 조명이 들어가면 높이는 200mm가 더 높아진다. 그리고 밑에는 비료와 물 조리개, 흙과 씨앗을 보관할 수 있는 문이 달린 공간도 만들었다. 추가로 가위를 걸 수 있는 곳과 서큘레이터를 장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가벼운 비가 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밭에 내놓은 모종판이 낯선 비바람에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24. 1. 29.
2022년 4월 13일 수요일 12:20:08 시골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얇은 검은색 플라스틱 모종판이 아닌 아주 고급스러운 모종판을 30개 구매했다. 그러나 사놓기만 하고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미루고만 있던 작업을 시작했다. 이 특별한 모종판은 도시인들을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기성품이지만 잡초를 키우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이라서 샀다. 실내에서 물을 줘도 바닥으로 흐르지 않도록 예쁜 초록색 물받이가 있고 공기가 순환할 수 있도록 밸브가 달린 투명 뚜껑도 있다. 물론 모종판도 뿌리를 확인할 수 있도록 투명하다. 하나의 모종판에는 12개의 모종을 심을 수 있는 구멍이 나 있고 총 30개가 있으니 360개의 모종을 심을 수 있는 작지 않은 크기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고 해서 잡초가 무성한 아로니아 밭에 군데군데 놓았다. 사진 속 모종판 위치는 집.. 2024. 1. 29.
2022년 4월 12일 화요일 17:39:01 섭씨 30도에 가까운 매우 습하고 무더운 날씨다. 오늘은 Kodak Porta 400 120mm를 끼우고 어제 정원에 심어준 "잡초가 아니지만 잡초들과 함께 잡초처럼 길러진 녀석"들을 촬영했다. 그리고 400평에 심어진 아로니아 나무 257그루를 점령하고 있는 야생의 잡초들과 정원의 잡초들을 뽑아 무덤처럼 쌓아 올린 흔적을 촬영했다. 사진 속의 넓은 나무판자를 잡초 위에 얹어서 자연스럽게 녀석들이 죽게 하는데 그럼에도 죽지 않고 뿌리를 뻗어 나가는 녀석들의 존재감이 실로 공포스럽다. 꽃잎이 보라색에 가까운, 매우 가녀리지만 엄청난 성장 속도를 자랑하는 "옥괘기(제주 방언)"라는 풀이 있다. 현재 아로니아 밭을 점령한 놈인데 이들의 색이 사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칼라 필름으로 촬영을 고.. 2024. 1. 29.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14:50:09 잡초가 아닌 줄 알면서도 잡초라 생각하며 꾸준히,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녀석의 줄기를 잘랐다. 자르면 자를수록 녀석의 줄기는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졌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고 잘 버텨줬다. 아주 어릴 때 산양에서부터 키워온 녀석은, 오늘 세 번째로 햇빛을 받으며 집 앞 정원에 심어졌다. 보랏빛 인공조명 아래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녀석의 작은 꽃망울이 가녀린 줄기 끝에 애처롭게 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린다. 녀석을 포함해서 7종류의 잡초가 아닌 줄 알면서도 잡초처럼 키워 온 녀석들을 정원 곳곳에 심었다. 오늘은 날씨가 매우 환해서 조금 흐린 날씨에 칼라 필름을 들고 정원에 심은 녀석들을 찍어줘야겠다. 흑백에서 본연의 색을 찾은 풀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2024. 1. 29.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01:01:19 두 롤을 현상했다.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먼 거리에서 익스텐션을 사용하지 않고 잡초의 큰 모습을 촬영한 장면들은 모두 얼룩이 생겼다. 이는 배경지에 닿는 조명의 양이 서로 달라서 생기는 문제인데 촬영할 때마다 꼼꼼하게 확인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네거티브에 노출 부족, 노출 과다 부분들이 나타난다. 물론 가까이 가서 촬영을 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다. 어제부터 잡초들이 잠을 잘 수 있게 불을 꺼주고 있는데 마음이 점점 더 약해진다. 나 때문에 햇빛도 보지 못하면서 꾸역꾸역 좀비처럼 키워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녀석들에게 마당에 있는 정원 한 자리를 마련해서 좋은 흙에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   (오후에 오일장에 가서 삼만원어치 꽃을 사서 마당에 심었지만 행복하지 않다.) 2024. 1. 29.
2022년 4월 8일 금요일 23:48:33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어둠이다. 하지만 어둠이 처음인 아이들이 있다. 많은 고민을 한 결과 24시간 녀석들을 고통스럽게 비추던 보라색 식물재배등을 모두 껐다. 이들에게 어둠은 오늘이 처음이다.   (내일 현상을 위해 120mm 두 롤을 현상 릴에 감아놨다. 오늘은 많이 지친다.) 2024. 1. 29.
2022년 4월 7일 목요일 00:07:27 인터뷰를 위해 그제 서울에 다녀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샤워하고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운전해서 공항에 갔다. 오전 6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7시 50분에 김포에 도착해서 중앙보훈병원행 9호선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출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플랫폼에 몰렸다. 그래도 모두들 차례를 지키며 급행열차를 타는 빨간 줄 안으로 줄을 섰다. 하지만 잠시 후, 급행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얌전했던 사람들이 모두 야수로 돌변했다. 줄은 오간대 없고 모두 섞여 뒤범벅이 됐다. 나는 꽤 앞에서 순서를 기다렸음에도 뒤에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끼어들면서 순간 맨 뒤로 밀려났고 겨우 탑승할 수 있었다. 그렇게 1시간을 서서 종점까지 갔고 다시 택시를 타고 인터뷰가 있는 건.. 2024. 1. 28.
2022년 4월 3일 일요일 02:16:56 가장 길게 자라고 있던 "환삼덩굴" 두 녀석을 짧게 잘라줬다. 산양 이후로 녀석을 가지치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자른 줄기의 단면에서 수액이 계속 맺힌다. 그걸 바라보는 심정이 좋지 않다. 수액이 맺히면서 그 표면이 작업실 주변을 볼록 렌즈처럼 비추길래 하얀 종이에 "미안해"라고 쓰고 글이 보이게 촬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120mm 두 롤을 촬영했고 바로 현상했다. 물론 120mm 두 롤과 35mm 두 롤, 총 네 롤이다. 그런데 상당히 무리했다. 중형 필름까지는 괜찮았는데 소형 필름을 릴에 감는 과정에서부터 삐걱거리더니 작업실 바닥에 1000ml '포토플로'를 엎질렀고 필름 건조를 위해 화장실에 걸었을 때 두 개의 필름 면이 붙어 버리는 초유의 사건이 터졌다.  (어제는 산양 1기 작가님들과 오랜만.. 2024. 1. 28.
2022년 3월 31일 목요일 23:22:49 3월 마지막 날이다. 남은 필름은 두 롤이지만 작업실에 와서 위 사진 속 녀석에게 10컷을 선물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화장실에 있는 잡초들을 정리했다. 여기서 나의 정리라는 것은 버린다는 뜻이 아니고 흐트러져 있는 화분들을 줄 맞추고 죽은 이파리들을 잘라주면서 잡초들을 예쁘게 다듬는다는 뜻이다. 내일 산양에서 같이 생활했던 작가님들이 작업실에 놀러 오시기 때문에 손님맞이 단장을 했다. 잡초를 정리하면서 잡초 안에서 자라는 또 다른 잡초들의 존재를 깨달았다. 독립적인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는 그 화분의 주인공인데 다른 주인공의 틈새에서 슬금슬금 나오는 녀석들은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 (잡초 촬영을 위해 잡초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촬영용 선반이 필요하다.)      (필름 11롤을 주문했다. .. 2024. 1. 28.
2022년 3월 28일 월요일 01:52:46 두 롤을 현상했다. 서울 다녀온 카메라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주 건강하다. 잡초들을 키우고 있는 화장실 안이 식물원이 되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곤충들이 화장실과 작업실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녀석들의 사체도 계속 쌓이고 있다. 지난번 루프 관계자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 언제 이 프로젝트를 끝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할 때기 온 것 같다. 잡초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내 안의 감정이 매우 날카롭게 아린다. 잡초들을 꺼내 밖에 심는 행위는 나에게 또 다른 모순을 불러일으키는 제스처가 될 것이다. 그들 역시 결국 시간이 지나면 기존의 잡초들과 다를 바 없이 무참히 뽑히고 아딘가에 버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프로젝트는 어쩌면 당연한 결말을 알기에 .. 2024. 1. 28.
2022년 3월 25일 금요일 00:32:18 9월에 있을 [대안공간 루프]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교류전을 위해 어제 하루는 서울에서 일정을 보냈다. (잠정적으로는 잡초들을 위한 집을 만드는 방향으로 설정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보낼 작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데 8폭 병풍이나 족두리 그림을 만들어서 걸 수 있는, 그래서 쉽게 이동이 가능하면서도 동양적이고 재미가 있는 설치 작업을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루프 디렉터님과 큐레이터님, 코디네이터님과 참여 작가님, 그리고 노원에코센터 관계자분들과 야외에서 긴 시간 동안 미팅을 했는데, 나 역시 잡초들의 씨앗을 모아서 아카이브 하는 방법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벽에 걸려 있는 여러 토종 씨앗들이 샬레에 담겨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고장이 나서 서울로 보냈던 핫셀블라드는 다시 그대로 나에게.. 2024.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