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재배 일지/2022년190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15:15:44 지난밤에 촬영했던 풀에서 꽃이 폈다. 아침에 아주 작은 꽃망울을 품더니 방금 활짝 폈다. 녀석들이 꽃을 피우는 시간은 정말 빠르다. 사진 속 녀석은 "개망초"다. 예전에 큰 가지치기 작업을 했는데 그 결과로 줄기 곳곳에서 삐죽삐죽 새 순을 내밀며 번식을 하려고 한다. 하나의 꽃이라도 피워서 씨앗을 퍼트리려고 하는 녀석의 당연한 생존본능이지만 사실 내 욕심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바깥에서 자라는 녀석과 같은 개망초들은 이미 모두 생을 마쳤으므로 녀석이 지금 계절에도 살아있는 건 모순이다. 2024. 7. 8. 2022년 10월 28일 금요일 22:34:59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면접을 보고 왔다. 대기실에 있을 때는 전혀 긴장을 하지 않았는데 면접실에 가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처음으로 겪는 호흡 곤란이 왔다. 나조차 너무 놀라서 처음 10초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말은 했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왜 모든 면접관은 무섭게 생겼을까. 웃지도 않았다. 그리고 정확히 주어진 시간 5분이 지나자 질문이 두 개 주어졌다. 하나는 창동에서 할 작업, 나머지 하나는 나의 작업과 예술의 무의미성에 관한 것인데 두 번째 질문을 받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잡초 재배 프로젝트는 예술의 무의미성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지만 프로젝트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성을 비유해서 설명했다.. 2024. 7. 8. 2022년 10월 23일 일요일 23:57:09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앱으로 간단하게 편집해도 이렇게 쉽게 잘 나오는데 위 사진 속에 있는 녀석 하나 촬영하는 데 사용한 4x5인치 필름이 너무 많다. 오늘 낮에 아내의 허락을 받고 두 시간 동안 4x5인치 필름 8컷을 현상했고 아이들과 굿나잇 인사를 하고 다시 두 시간 동안 4x5인치 필름 8컷을 현상했다. 오늘 하루 16컷의 대형 필름을 현상했지만 맘에 드는 네거티브는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일지를 쓰기 전에 다시 대형 필름 3컷을 사용했는데 그 중 하나가 위 녀석이다.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로 서울에 가서 전시 철수를 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준비를 못했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환삼덩굴 두 뿌리인데 녀석들을 어떻게 포장해서 제주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가지고 올 지 모르겠다. 무게도 만만치 않아서 홍대에서.. 2024. 7. 7. 2022년 10월 23일 일요일 02:30:18 아이들이 일찍 자서(20시) 20시 30분부터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우선 현상 작업이 밀린 필름들이 많아서 4x5인치 8장과 120mm 두 롤을 했지만 화장실에 잡초를 키우고 있어서 작업실 책상에 휴지를 깔아 놓고 건조를 했다. 하지만 이 일이 화근의 시작이었다. 필름이 마르면서 벽에 달라붙어 버렸고 나는 다시 필름들을 수세하고 포토플로를 거쳐 결국 화장실에 다시 필름을 걸었다. 약 5시간 넘게 현상을 했는데 이번에는 먼지와 스크레치가 생겼다. 아, 물론 현상하기 전에 수많을 촬영도 했다. 오늘 120mm 두 롤과 셀 수 없이 많은 4x5인치 필름을 찍었다. 현상을 한 이후 한 장면이 맘에 들지 않아서 다시 대형 카메라를 세웠고 6장을 촬영했다. 이제 현상해야 할 필름이 14장 남았다. 물론 대형 필름.. 2024. 7. 7.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23:21:00 정원에 있던 대부분의 잡초를 화장실로 옮겼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기 때문이다. 아직 옮기기 않은 녀석들도 꽤 많지만 모두를 안에 넣어두기에는 화장실이 너무 좁다. 그래서 개인전에 설치됐던 녀석들과 2년째 살고 있는 녀석들 중심으로 심혈을 기울여 선택을 했지만 맘이 불편하다. 현재 작업실 온도는 21.6도, 손이 좀 시릴 정도다. 난로를 켜고 생활한 지는 꽤 됐다. 11월 3일부터 [포지션 민]에서 전시가 있는데 잡초가 주인이 된 화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무로 곱게 제작한, 높이가 서로 다른 선반에 원래 있던 화초가 아닌 잡초가 주인이 되어버린 작업이다. 처음으로 잡초와 화분이 단독으로 주연을 맡은 전시인데 이게 과연 사람들에게 또는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들에게 설득력이 있을지 하루 종일 고.. 2024. 7. 7. 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03:05:49 부산에 다녀온 이후 잡초 촬영보다는 잡초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서 나흘 만에 글을 쓰고 있다. 위 사진 속 공간은 집 앞 공유지이다. (아까 밤에 휴대전화로 촬영한 이미지다.) 공유지이기 때문에 집 앞이라고 해도 법적으론 내 땅이 아니다. 나는 이곳을 사적으로 불법 점유를 했고 잡초를 키우고 있다. 수국도 심었고 여러 꽃들도 심었다. 물론 매일은 아니지만 농업용수가 아닌 수돗물로 물도 주고 있다. (맘 같아서는 포클레인으로 떠서 도심지에 놓고 싶다. 저곳의 크기는 250 x 8000mm이다.) 오늘은 두 딸아이와 저곳에 수국과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심었다. 정원 작은 화분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자라던 녀석들인데 안쓰러워서 심었다. 집에 있던 식물 영양제도 꽤 많이 설치했다. 요즘 매일 저곳을 바라본다... 2024. 7. 7. 2022년 10월 13일 목요일 22:32:20 12일, 13일 이틀 동안 부산에 다녀왔다. 낯선 곳에서 많은 일이 있었고 신비로운 것들을 봤으며 여러 경험을 했다. 길게 쓰고 싶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위 사진은 [부산현대미술관] 외벽 모습이다. 사실, 이번 부산 일정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미술관 내부에 있는 부산 비엔날레 작품들도 좋았지만 나는.. 저 초록색의 녀석들이 건물을 모두 뒤덮으며 자라는 모습이 더 인상 깊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이다. (사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녀석들을 보며 크게 "와우!!" 하고 소리까지 쳤다.) (내년 봄에 부산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척 흥분되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있다.) 2024. 7. 7. 2022년 10월 9일 일요일 02:49:09 원래 계획은 8컷만 현상하는 것이었으나 필름 두 장이 트레이 안에서 귀신에 홀린 듯 붙어 있다. 트레이의 뚜껑을 닫을 때 분명히 한 번 더 확인을 했음에도 처참한 결과가 나타났다. 하필이면 지지난번 촬영에서 실패해서 재촬영한 이미지가 또 이렇게 됐다. 다시 필름을 홀더에 넣었고 재촬영해서 바로 현상했다. 그래서 오늘 현상한 필름은 12컷이며 그중 열 컷을 건조 중이다. 늦은 낮에 아내와 세 아이들과 함께 잔칫집에 다녀왔다. 시내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아이들이 밥 대신 과일만 잔뜩 먹는다. 첫째 딸아이는 키위, 둘째 딸아이는 바나나다. 아내는 디저트와 떡, 나는 초밥과 생선회. 세 아이들과 함께 밖을 다니다 보면 주위 시선을 꽤 많이 느낀다. 주로 "아빠가 능력이 있나봐~??" 또는 "아들 낳으려고.. 2024. 7. 4.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22:37:11 촬영을 하다 보면 이상하리만치 잘 안 찍히는 대상이 있다. 대개는 보통 열 번 이상을 찍어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진 속 녀석도 그런 피사체이다. 중형 카메라로 스무 번 이상, 대형 카메라로 열 컷 이상을 찍었다. 오늘은 정말 신중하게 다시 녀석을 찍었다. 4x5 필름으로 가로와 세로로 두 컷. (오늘은 아이들과 안덕에 있는 [무민월드]에 다녀왔다.) 2024. 7. 4. 2022년 10월 4일 화요일 15:27:37 첫째와 둘째 아이가 오늘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눈병이 아직 낫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 작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둘 다 모두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잡초 촬영을 할 때 주로 흰색 배경지를 사용했다. 풀 색이 대부분 초록색이나 연두색이기 때문에 녀석들의 형태를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한 나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검은색 배경지를 사용했다. 노지에서 자라는 녀석들, 죽은 잡초들을 몇 장 찍었는데 하얗게 말라죽은, 자연에서 자랐던 "어저귀"의 형태를 드러내는데 흰색보다는 검은색이 맞을 것 같았다. 내 손 안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잡초가 아닌 야외에서 찬바람과 비를 그대로 맞으며 자라던,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자연스럽게 씨를 맺고 죽음을 맞이한 풀이다. 나 역시 노지.. 2024. 7. 3. 2022년 10월 4일 화요일 04:45:13 현상할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4x5 필름 8장, 120mm 한 롤을 현상했다. 4x5 Ilford HP5+ 필름은 1:50으로 13분 현상했고, 매 1분마다 20초씩 교반 했다. 또한 처음 약품 주입 시부터 하는 교반은 트레이를 두 손으로 들고 공중에서 원을 그리듯 교반 했다. Stop Bath와 Fixer, H.C.A 역시 원을 그리듯 교반을 했지만 매 1분마다 하는 교반은 트레이의 네 면을 천천히 들어 올려 20초에 두 번씩 반복했다. 탱크와 달리 트레이는 교반의 범위가 넓어서 탱크 교반보다 두 배 시간을 더 줬으며 메뉴얼 상 11분인 데이터에 2분을 추가해서 총 13분을 했다. 결과적으로 탱크 현상보다 콘트라스트가 조금 더 강하고 하이라이트 부분이 조금 더 밝은, 내가 원했던.. 2024. 7. 3. 2022년 10월 4일 화요일 00:22:15 둘째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에 첫째 아이와 작업실에 있으면서 촬영을 좀 했다. 어제 현상 결과물을 보고 난 후 많은 고민이 생겼다. 1:50과 1:100 현상 비율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여전히 판단이 서질 않는다. 공부를 해 본 결과 보통 1:100의 현상 비율은 스탠딩 현상을 하는데 HP5+는 고감도 필름이라서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잘못하면 화이트 부분에서 포그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50의 비율이 맞지만 잘못된 교반 방법으로 인한 얼룩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 고민을 하루 종일 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 낮에 촬영한 120mm 필름과 4x5 필름 9컷을 현상하지 못하고 있다. 위 사진은 정원에서 자라는 녀석의 몸에 붙어있는 무언가를 촬영한 것인데 Potra160 4x5 칼.. 2024. 7. 3. 이전 1 2 3 4 5 6 7 ··· 16 다음